본문 바로가기

재미있는 한국사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 관계와 내부 갈등 | 한국사 조선 후기 이야기

한국사 스토리텔링 연재 9일차 2편 · 조선 후기 – 개항과 갈등

메인/서브 키워드
메인 키워드 서브 키워드
개항, 국제 관계, 내부 갈등 강화도 조약, 개화파, 위정척사파, 김옥균, 박영효, 이항로, 최익현, 동학, 개항장 풍경
 

1) 서론: 문을 연 조선, 새로운 바람

개항근대 전환기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은 더 이상 고립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바닷길로 외국 배가 드나들었고, 낯선 상인과 외국인들이 항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람들은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낯선 힘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이었습니다. 장터의 아이들은 서양인의 푸른 눈과 긴 코를 보며 놀라워했고, 어른들은 “이제 세상이 변하는가”라며 술렁였습니다.

2) 강화도 조약과 불평등한 개항

강화도 조약불평등 조약

강화도 조약은 일본이 군함을 이끌고 조선을 압박해 맺어진 조약이었습니다. 조선은 자주국임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치외법권(자국민은 조선법 적용을 받지 않음)을 인정받고, 개항장에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얻는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당시 한 관리가 “겉으로는 대등하다 하나, 속으로는 나라를 빼앗기는 조약”이라 한탄했을 정도였습니다.

 

부산과 인천의 항구에 일본 상선과 서양 증기선이 정박해 있고, 조선 상인들이 쌀 포대를 나르는 풍경
부산·인천·원산은 조선의 첫 개항장이 되어, 외국 상인과 새로운 물품들이 드나드는 관문이 되었다.

3) 개항장의 풍경과 사회 변화

부산원산인천

부산, 원산, 인천은 새로운 시대의 창이 되었습니다. 항구에는 일본 상인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이어서 서양 상인들도 드나들었습니다. 개항장 거리에는 일본식 건물과 상점이 늘어서기 시작했고, 중국 상인들도 몰려왔습니다.

부산포에는 일본 상인이 세운 큰 창고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조선 상인들은 그 옆에서 소박하게 장사를 이어갔습니다. 인천에는 서양 기선이 정박했고, 아이들은 처음 보는 굴뚝에서 연기를 내뿜는 철선을 “하얀 용”이라 불렀습니다. 원산에서는 비단, 차, 도자기 같은 중국 물품이 들어오며 장터를 가득 메웠습니다.

조선 백성들에게는 충격과 설렘이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서양의 유리잔, 비누, 성냥 같은 작은 물건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장터에서는 “이 성냥으로 불을 켜면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고, 아이들은 그것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습니다.

 

한양 서원 마당에서 개화파 청년과 위정척사파 선비들이 맞서 토론하는 장면 삽화
"새 제도를 받아들일 것인가, 지켜낼 것인가.” 조선의 지식인들은 나라의 길을 두고 격렬히 논쟁했다.

4)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

개화파위정척사파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막아낼 것인가? 조선의 지식인들은 치열하게 논쟁했습니다. 개화파는 일본과 서양의 제도를 배우고 군사·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위정척사파는 전통 질서를 지켜야 하며, 외세와의 교류는 나라를 망치는 길이라 경고했습니다.

한양의 서원 마당에서, 선비들이 모여 큰 소리로 논쟁했습니다. 개화파는 “새 물길을 막으면 강은 썩는다. 세상은 이미 변했다”고 했고, 위정척사파는 “옛 제도를 버리면 나라는 뿌리 없이 쓰러진다”고 맞섰습니다. 이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의견 차이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였습니다.

5) 동학 사상의 확산

동학농민

농민들에게 개항은 곧 세금과 착취의 심화로 다가왔습니다. 일본 상인들이 곡식을 헐값에 사들이자, 백성들은 굶주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동학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동학은 “사람은 누구나 하늘과 같다”는 평등 사상을 전했고, 이는 억눌린 농민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마을 장터에서는 몰래 동학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젊은이들은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6) 위인 스토리텔링

김옥균박영효 같은 개화파 청년들은 일본과 서양을 다녀오며 새로운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김옥균은 돌아와 “이제는 새 제도를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바다에 떠 있는 배처럼 표류할 뿐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반면 이항로최익현 같은 위정척사 사상가들은 나라의 도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익현은 개항장에 세워진 일본 상인의 건물을 보며 “나라의 기둥을 빼앗긴 것과 같다”며 분노했습니다. 두 세력은 서로 다른 길을 제시했지만, 모두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같았습니다.

7) 국제 정세와 조선의 입지

청나라일본서양 열강

개항 이후 조선은 거대한 국제 무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청나라는 여전히 종주권을 주장했고, 일본은 조선을 발판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미국, 영국, 러시아 같은 서양 열강도 차례차례 조선과 조약을 맺으며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조선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흔들렸습니다.

8) 개항기의 의미와 한계

개항기는 조선이 근대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이었습니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왔고, 개혁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불평등 조약과 외세의 간섭은 나라의 주권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희망과 위기, 기회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9) 결론: 새로운 세기의 서막

개항은 조선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항구에 들어온 증기선의 연기처럼, 조선은 이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연재 연결 — 다음 9일차 3편에서는 동학 농민 운동과 갑오개혁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물결을 다룹니다.
 

출처

  • 『조선왕조실록』 고종조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한국근현대사학회, 『조선 개항과 국제 정세』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0권』

어려운 용어 풀이

  • 강화도 조약 : 1876년 조선과 일본이 맺은 불평등 조약. 개항의 시작.
  • 치외법권 : 외국인이 조선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자기 나라 법만 적용받는 권리.
  • 개화파 : 서양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려 한 사람들.
  • 위정척사파 : 전통을 지키고 외세와의 교류를 거부한 보수 세력.
  • 동학 : “사람은 하늘”이라는 평등 사상을 강조한 민중 종교 운동.
  • 불평등 조약 : 외국에는 이익이 많고 조선에는 손해가 되는 조약.

https://jjugglenyang.tistory.com/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