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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신진사대부의 등장 | 한국사 중세사 이야기

한국사 스토리텔링 연재 5일차 2편 · 중세사 – 고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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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신진사대부 공민왕, 성리학, 안향, 이제현, 정몽주, 정도전, 권문세족, 전민변정도감
 

1) 고려 후기의 위기와 변화

몽골 간섭기위기

13세기 후반, 고려는 몽골의 지배를 받아 원 간섭기라는 시기를 겪었습니다. 왕실은 원나라 공주와 혼인하며 부마국이 되었고, 정치와 군사 면에서 원의 간섭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려의 자주성은 크게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 속에서도 고려 사회 내부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기존 권력을 독점하던 권문세족이 사회 모순을 심화시킨 반면, 지방 출신 학자들이 성장하며 새로운 정치 세력, 즉 신진사대부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집에서 연회를 열고, 하인들이 시중을 드는 권문세족의 생활을 표현한 삽화
권문세족은 토지를 독점하고 원나라와 결탁해 부와 권력을 누렸으며,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2) 원 간섭기 체제와 권문세족

부마국권문세족

고려는 원과 혼인 관계를 맺으며 부마국이 되었고, 원의 정치 간섭은 일상화되었습니다. 왕위 계승조차 원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의 최고 지배층은 권문세족이라 불리는 귀족 집단이었습니다.

권문세족은 토지를 대규모로 차지하고, 원나라와 연결된 힘으로 정치와 경제를 장악했습니다. 그 결과 농민들은 점점 몰락했고, 사회 불평등은 심화되었습니다. 권문세족의 횡포는 백성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새로운 사회 세력을 필요하게 했습니다.

3) 사회·경제적 변화

농민 몰락홍건적왜구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으로 많은 농민이 땅을 잃고 떠돌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불만 속에 농민 봉기가 전국에서 잦아졌습니다. 또한 외부의 침략도 고려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밀려온 홍건적과 일본 해적 왜구의 침입은 백성들의 삶을 크게 위협했습니다.

이처럼 내부의 불평등과 외부의 위협은 사회 불안을 심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백성들은 스스로 삶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고, 이 과정에서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4) 신진사대부의 성장 배경

성리학과거제

이 혼란 속에서 등장한 세력이 신진사대부였습니다. 이들은 지방의 향리 출신이나 비교적 낮은 신분에서 과거 시험을 통해 중앙 정계로 진출한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권문세족과 달리 개혁 의지가 강했고, 백성을 돌보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특히 성리학의 도입은 신진사대부의 정신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성리학은 유교의 가르침을 발전시킨 학문으로,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했습니다. 불교 중심 사회였던 고려에서 성리학은 새로운 사상적 대안이 되었습니다.

 

안향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성리학 서적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장면 삽화
안향은 성리학을 고려에 처음 들여와 신진사대부 성장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

5) 위인 스토리텔링

① 안향 – 성리학을 처음 전한 학자

안향은 고려에 처음 성리학을 전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원나라에서 주자학을 배우고 돌아와 성리학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의 활동은 이후 신진사대부 성장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② 이제현 – 고려의 개혁 지식인

이제현은 공민왕 때 활동하며 성리학을 발전시킨 대표 학자입니다. 그는 불교와 권문세족의 폐단을 비판하고, 성리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했습니다.

③ 정몽주 – 고려 말 충신

정몽주는 신진사대부의 대표적 인물이자 고려 말의 충신입니다. 그는 끝까지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했으나, 결국 조선 개국 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④ 정도전 – 조선 건국의 사상가

정도전은 신진사대부 출신으로, 고려 말의 부패를 개혁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이상을 가졌습니다. 그는 조선 건국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며 조선의 기틀을 세운 핵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궁궐에서 공민왕이 대신들과 함께 토지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장면 삽화
공민왕은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를 바로잡기 위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다.

6) 공민왕의 개혁과 한계

공민왕전민변정도감

14세기 중반, 공민왕은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친원 세력을 몰아내고, 잃었던 영토를 되찾는 반원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를 바로잡기 위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권문세족의 반발과 왜구·홍건적의 침입, 그리고 왕권의 약화 때문에 개혁은 끝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혁 시도는 신진사대부가 본격적으로 정치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7) 고려 후기의 의의

고려 후기는 외세의 간섭과 내부 모순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력이 성장한 시기였습니다.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권문세족과 불교 중심 사회를 비판하며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이들의 정신은 조선 건국으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고려 후기는 단순히 쇠퇴의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준비한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8) 결론: 조선으로 이어지는 다리

몽골 간섭기라는 위기 속에서도 고려는 새로운 사회적 에너지를 키웠습니다. 신진사대부의 성장과 공민왕의 개혁은 비록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연재 연결 — 다음 5일차 3편에서는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과 조선 건국 직전의 역동적인 정치 변화를 살펴봅니다.

출처

  • 『고려사』 권128~131
  • 『고려사절요』 후기 기록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 이기백, 『한국사신론』
  • 한국중세사학회, 『고려 후기 사회와 신진사대부』

어려운 용어 풀이

  • 부마국(駙馬國) : 다른 나라 황실의 사위 나라, 즉 고려 왕이 원 황실 공주와 혼인해 사위가 되었음을 의미.
  • 권문세족(權門勢族) : 고려 후기 권력을 독점한 귀족 집단.
  • 홍건적(紅巾賊) : 원나라 말기에 발생한 농민 반란군, 고려에도 침입.
  • 왜구(倭寇) : 고려와 조선을 약탈하던 일본 해적.
  • 성리학(性理學) : 송나라 주희가 완성한 학문, 유교를 새롭게 발전시킨 사상.
  •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 :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바로잡기 위해 설치한 임시 기구.

다음 편(5일차 3편): 공민왕의 개혁과 조선 건국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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